1942년, 스물이 갓 넘은 청년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9년이 지난 2019년,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기업가로 자랑스러운 이름을
올립니다. 대한민국 재계 5위 기업 롯데를 이끌어온
신격호 명예회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83엔으로 만든 성공 ]
1942년,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청년 신격호의 손에는 단돈 83엔뿐이었습니다.
낮에는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1948년 6월, 신격호 명예회장은 화학 회사를 시작으로
(주)롯데를 설립합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신격호 명예회장의 마음 깊은 곳에는
또 다른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돈을 벌어 대부분 한국으로 보낸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으로 한국 국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바둑기사 조치훈, 야구선수 장훈,
권투선수 홍수환 등이 경제적 어려움과 차별을 겪을 때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
정치, 사회적으로 어려운 모국에 대한 걱정은
신격호 명예회장을 한국으로 이끌었습니다.
1967년, 한일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합니다. 조국에 기여하려는 간절함이
‘기업보국(기업 경영을 통해 나라에 보탬이 됨)’의 꿈을 꾸게
만든 것이죠.
신 명예회장은 모국 투자를 통해 얻게 된 수익을 해외로
과실송금하지 않고 재투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IMF 관리를 받게 되자,
재계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2천만 달러의 사재를 출자하고
5억달러의 외자를 도입해 주목 받은 바 있습니다.
[ 롯데가 걸어온 길 ]
기업가 정신과 도전 DNA를 바탕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은
본격적으로 롯데그룹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국내에 외국 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호텔 사업을 구상하고, 1979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인 소공동 롯데호텔을 엽니다. 이후 롯데호텔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1979년 오픈한 소공동 롯데백화점은 당시 업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 백화점에 견줄 만큼 독보적이었습니다.
이후 백화점은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롯데쇼핑은 고객중심 서비스, 현대화된 유통구조 등
선진화의 주역으로 평가받았죠.
1979년은 롯데그룹이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고,
상업생산을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산업을
이끌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이름을 바꾸며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합니다.
1989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가 문을 열었습니다. 허허벌판인 잠실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에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소신이 있었고,
롯데월드는 큰 인기를 누리는 명소가 됐습니다.
[ 두 번째 꿈을 꾸다 ]
잠실에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동안 신 명예회장은 또 하나의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2롯데월드’를 건설해
잠실 지구를 한국의 랜드마크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복합 관광명소로 키워내겠다는 것이었죠.
1988년 부지를 매입한 이후 2011년 롯데월드타워의
건축허가 최종 승인이 나기까지 오랜 기간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롯데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7년 4월,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에는
1만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하루 평균 13만명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롯데월드타워는 4조 3000억 수준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등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대표 랜드마크로서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1995년 신 명예회장은 관광산업에 대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관광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롯데는 92개 계열사에서 19만명의 종업원이 일하며,
전세계 27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롯데를 대한민국 재계 5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신격호 명예회장은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서
오래전 품은 기업보국의 꿈을 실천했습니다.
1983년에는 롯데장학재단을 설립, 전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학습시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설립된 롯데복지재단은 소외된 계층을 돕기 위한
복지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 명예의 전당에 오르다 ]
2019년 3월 22일. 한국경영학회는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기업가 부문에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선정했습니다. 2016년부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가들에게 수여된 이래, 현존하는 창업 1세대가
수상한 것은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이 최초입니다.
김용준 한국경영학회장은 신 명예회장의 수상에 대해
“산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전후 모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한민국의 재건 및 산업 부흥의 주춧돌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특히 최근 어려운 한일 관계 속에서
신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백수(99세)의 나이로 거동이 불편한
신격호 명예회장을 대신해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대리 수상했습니다. 40년 직장생활 중 23년 동안
신격호 명예회장을 보좌한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제과를 설립할 당시,
이미 50에 가까운 연세였습니다. 아무리 조국이라 할지라도
나라를 옮겨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대단한 도전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 운영하던
식품 업종뿐 아니라 전혀 알지 못했던 유통, 관광, 서비스,
석유화학 등 영역을 넓혀 각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명예회장님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보여준 ‘기업보국 정신’과 ‘도전 DNA’는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며
롯데를 성장케 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롯데그룹은 앞으로도
국민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