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작은 산골짜기 둔기리 마을의 소년에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일궈낸 거인.
고향을 너무도 사랑했던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금 전해드립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어린 시절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음력 10월 4일,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의 한 농가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신 명예회장은, 산골짜기였던 둔기리 마을에서
먼 길을 걸어 4년제였던 삼동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제였던 언양보통학교(초등학교)에
편입해 졸업했습니다.
이후 신격호 명예회장은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나이에 경남 도립 종축장에 취업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부관 연락선을 타고
도일했습니다.
일본에서 소규모 식품업으로 시작한 이 젊은 사업가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타고난 감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는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사업 보국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간 지 20여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편, 신격호 명예회장의 어머니 김순필 여사는 큰 아들이
일본으로 간 뒤 아들의 앞날을 기원하며
매일 문수암(현 문수사)을 찾아 불공을 드렸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훗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문수암에 크게 시주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축총림 통도사의 말사였던 문수암은
울산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문수사로
발전할 수 있었죠.
매년 5월, 동네주민들을 만나다
사업에 성공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1971년부터
매년 5월마다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어왔습니다.
이 잔치에는 숨은 사연이 있습니다.
1970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을 위해 대암댐이
건설되면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향인
둔기리 지역이 수몰된 겁니다.
이에 신격호 명예회장은 1971년 마을 이름을
딴 <둔기회>를 만들고 고향을 잃고 곳곳으로 흩어진
주민들을 초청해 마을잔치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십 명만이 참여하던 마을잔치가
점점 성대해졌습니다. 이들의 자식과 손자가 생기면서
잔칫날에는 작은 마을이 자동차와 사람으로 북적거릴
만큼 규모가 커졌습니다. 집과 논밭을 포기하고
인근 도시로 떠나야 했던 둔기리 주민들은
이 마을잔치 덕에 매년 고향 사람들을 만나
옛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평소 자신을 드러내거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날만큼은
서로 안부를 묻고 활짝 웃으며 옛 주민들과 어울려
사진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마을잔치가 열린 별장에서 길 건너 언덕에는 복원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가가 있습니다.
수몰되기 전 생가를 허문 다음, 기둥과 서까래 등을
옮겨와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지을 수 있었죠.
집 옆의 대나무밭까지
최대한 원형대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니,
옛 고향에 대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40여 년을 이어오던 이 행사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취소했고
행사 비용도 모두 기부했습니다. 이후 둔기리 마을잔치를
운영해온 주체인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오랜 고민 끝에 마을잔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2013년을 끝으로 40여 년간 이어온 마을잔치는
막을 내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고향 사랑
마을잔치는 끝났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향 사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뜻을 이어,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울산을 본거지로
고향사랑과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습니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울산 지역의 발전과 복지사업에
기여하겠다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2009년 12월에 설립됐습니다.
재단 명칭에 포함된 ‘삼동’ 역시 신 명예회장의 고향인
울주군 삼동면에서 따왔습니다.
‘고향 사랑, 이웃 사랑’ 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게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사회복지 관련 시설 및
단체 지원, 문화복지 지원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은 물론이고
장애인 지원과 화재 피해 가정 지원 등 현재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롯데장학재단은 자라나는 향토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통해 과학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취지에서 울산시 옥동연구단지 내에
울산과학관을 지어 울산시 교육청에 기증했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사재 240억 원을 출연해 2009년
착공한 울산과학관은 지하 2층, 지하 6층, 야외전시장 등
1만 7,000㎡ 규모의 과학체험교육시설로 1층에서 5층까지
전시체험관, 천체체험관, 과학 실험실과 강의실,
발명교육센터, 시청각실(빅뱅홀), 전시장(코스모스 갤러리)
등을 갖췄습니다. 2011년 3월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된 이후 매년 연간 50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울산의 명소로 부상하기도 했죠.
그리웠던 고향에서 영원히 잠들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묘역은 고향인 삼동면
둔기리 선영에 마련됐습니다. 집무실에 걸려 있던
‘거화취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이라는 말처럼,
또 생전 신격호 명예회장의 소망처럼
묘는 소박합니다. 매년 마을잔치를 열어 주민들과
만나고, 고향을 돕는 일이라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국의 유통 거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2020년 1월 19일,
99세를 일기로 그리웠던 고향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고향을 돕는 일이라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나섰던
신격호 명예회장. 울산 둔기리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있습니다.